추석 날 할머니 요양병원에 다녀왔다.
그렇다. 나에게는 두 분의 할머니가 계시고, 두 분 모두 요양병원에 계신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후에 한번도 찾아뵙지 않았다.
설 이후로 뵙지 못했으니. 반년 넘는 시간 동안 모른 채 하고 지내왔던 것이다.
우리 집은 애정표현이 거의 없는 집이다.
명절 때면 할머니 옆 자리는 항상 내가 눕는 곳이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할머니는 나에게 살가운 애정표현을 하신 적이 없었다.
할머니에게 가는 길에 나는 별다른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그리고 병실로 들어섰다.
할머니는 내 손을 잡으시고
"이놈의 가시나야 어디갔다 왔노."
하시며 서운함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병원 간호사들이 칠해주었다는 반짝이는 매니큐어는 거의 다 벗겨져 있었다.
오지않는 손녀에 대한 할머니의 기다림도,
거의다 벗겨저 버린, 손톱에 겨우 남아있는 꽃 분홍 매니큐어와 같지 않았을까.
나는 말없이 할머니의 손톱을 어루만졌다.
할머니는 내손을 잡으시고, 내 손등에 입을 연신 맞추셨다.
무뚝뚝한 할머니께서 이런 솔직한 애정표현을 하시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입을 맞추는 것인지, 피부가 닿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할머니의 입술에는 힘이 없었지만,
주체할 수 없이 고인 눈물과, 힘없이 손녀의 손을 잡아끄시는 할머니의 모습은
내게 깊이를 알 수 없는 죄송함과 가슴아픔을 불러일으켰다.
일부러 모른 채 하고 살았던 나의 얼음장 같은 마음이, 쩍 쩍 갈라져버렸다.
그 날 할머니의 식탁에는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가득히 추석음식들이 차려졌다.
우리가 할머니께 드리려고 싸간 음식들이었다.
식사를 많이 잡수시지 못하신다던 할머니께서
그 날은 주위 사람들이 걱정할 만큼이나많은 양을 천천히 드셨다.
아마도 그것은, 가족들과의 만남이, 무심한 손주,손녀들과와 만남이
점심식사 시간이 끝남과 함께 끝날것임을 알고계셨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할머니는 손주들의 나이와, 최근 소식을 모두 또렷하게 기억하고 계신다.
누가 언제 당신을 찾아왔는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할머니께는 생소한 대학원에 다니는 손녀가 있다는 것을.
이제 곧 군대를 들어갈 손주가 있다는 것을.
자전거를 타다가 다리를 다쳐서 병원에 갔던 손주가 있다는 것을.
이제 막 둘째를 임신한 손녀가있다는 것을.
사람의 정신은 육체의 노화에 발맞추지 못하는 것 같다.
사람이 늙어서 죽어간다는 것은
그 또렷한 정신에 못이겨 괴로움에 죽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벽에 똥칠하게 되는것도, 이 또렷한 정신이 만드는 외로움과 자괴감으로인해
스스로가 못견뎌 정신을 놓는 것이 아닐까.
차라리 치매에 걸리는 편이 인생을 마무리 하는 데에 더 편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본다.
식사를 마무리 할 때의 할머니의 담담한 표정과.
왁자지껄한 우리 할머니의 침실쪽을 아무런 표정없이 바라보던 같은 병실 할머니들의 모습.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육체의 물리적 쇠함으로 죽는것이 아니라는 것.
또렷한 정신이 만들어내는 괴로움과 쓸쓸함에 죽게 된다는 것. 나는 이것을 깨닫고 돌아왔다.
떠나는 나에게 할머니는 아까워죽겠다며 여기서 하루자고가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가 그렇게 까지 아쉬움을 표현한 손주는 나.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않았다.
입을 떼면 흘러내릴 것 같은, 목구멍 까지 차오른 거짓된 나의 눈물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이런. 손녀인 것이다.
무심하고 사랑도없는, 없는 이만 못한 그런 손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