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0였던 나의 삶의 태도를
A+로 바꾸어 보기로 한다.
삶에 많은 사람 필요하지 않다.
'자기가 좋아하는 봄냄새가 나.'
라고 말해주는 당신이 있어 수줍고 행복하다.
노란 등 밑을 뛰어 집에가던 날,
'oo아, 근데 너는 봄이 왜 좋아?'
라고 물어보던 다정한 그대의 한마디 문득 떠오른다.
그 때 나의 이름이 참으로 소담스럽게 느껴졌다.
당신은 나를 포근히 감싸는 봄이다. *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作
(*토리에게서 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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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와 로자 아주머니의 생.
생은 모모가 반했던 서커스처럼 고통이 없는 환상도 아니고, 더빙하는 영화처럼 뒤로 돌아갈 수도 없다. 사람을 관통하여 나간 총알이 다시 뒤로 날아가 총신으로 돌아가는, 생각만으로도 여러번 반복하고 싶은 그런 일은 생에 일어나지 않는다. 생은 로자아주머니에게 병과 죽음을 주듯, 그녀의 몸과 정신을 추하게 망가뜨리듯, 죽은 사람에게 썩은 냄새가 나듯, 창녀촌에 버려진 아이에게 어머니를 살해한 아버지를 보여주듯, 고단하고 초라하다. 하지만 아무런 꾸밈도 없는 생 자체가 하나의 기적일 수 있는 것은, 그 생을 증거해 줄 사람이 있기 떄문이 아닐까. 이 소설에서 모모와 로자 아주머니는 아무런 희망도 특별한 기쁨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사랑을 받고 사랑을 쏟을 수 있는 서로에게 항상 의지하였다. 그래서 그 삶은 슬프지만 아름답고 찬란하게 느껴졌다. 나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날것 그대로의 생의 먹먹한 소중함을 모모와 로자아주머니를 통해 느꼈을 것이다.
나는 자아실현이 가장 중요한 삶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나는 비어버린 내 꿈의 자리에 새로운 물을 붓고 있는 중이다. 한 때 꿈의 자리가 다 말라 아무것도 없었을 때, 나는 나를 지탱하기가 몹시 힘들었다. 내일이 궁금하지 않은 하루를 지내면서, 내가 오늘 눈을 감고 내일 눈을 뜨지 않더라도 괜찮겠다는 생각들을 하곤 했다. 그런 시간을 지탱해 준것은 나에게 모모와 같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내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 나에게 꿈이라는 것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을 때, 그래도 나를 '누구' 혹은 '어떤사람'이라고 정의해 줄 수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해주는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으 만큼 나약해지고 가진것이 없어졌을 때, 그래도 나는 우리 애인의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우리 엄마 아빠의 딸이고, 하느님의 자녀였다. 그게 나를 다시 꿈꾸게 하고 살게해 주었다. 로자아주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황폐한 정신을 고장난 기계처럼 마구 세상밖으로 투영할때에도, 추한 비계덩어리가 되어 버렸을 때에도, 심지어 죽어서 부패해 갈때에도 그녀는 모모를 사랑하는 로자이자 모모가 사랑하는 로자였다. 그래서 그녀의 생은 가치있고 찬란했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하밀 아저씨의 말.. 그렇다. 사랑 만이 모든 상황과 시간과 조건을 뛰어넘어 우리를 있는 그대로 빛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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