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해 봄

스물여섯 해 봄.
A0였던 나의 삶의 태도를
A+로 바꾸어 보기로 한다.

아버지와 미국

며칠전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아버지의 이야기였다.
요즘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가 전혀 몰랐던 부모님의 이야기를 간혹 듣게된다.
그 이야기를 되새겨 보면 26년을 나와 같은 공간에서 산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생경한 느낌이다. 어쩌면 나는 우리 부모님을 손톱만큼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나는 누구와 사는가!ㅋㅋ)과 함께 부모로서의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라 한 인간의 생에대한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버지가 대기업에서 일하실때, 외국 출장을 종종 다니시곤 했다. 우리 아버지의 뛰어난 영어능력으로 회사에서 출장갈 기회를 많이 접하신 것이다. 나에게는 아버지가 미국에 몇번 다녀오셨었다는 어렴풋한 기억이 남아있다. 아마도 얼굴보다 커다란 쪼꼬렛이나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캬라멜 같은 미제 식품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는 그저 며칠동안 아빠가 안보이다가 신기한 먹을것을 사오시는 그립고 신나는 기억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미국에서의 이야기를 알게되었다. 아버지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반해서 그곳에서 눌러앉을 방법을 찾아보셨다고 한다. 물론 불법체류방법을 알아보셨고, 우리를 버려두고 미국에서 사는 방법을 알아보신게다. 불법 체류 브로커를 만나서 방법(미국 여자와의 가짜 결혼)과 비용까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셨다는 것을 보니 이건 진심이다.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새끼들을 만날 날을 하루하루 손꼽은게 아니었다니! 한국이라는 나라가 너무 답답해서 넓은 대지를 가지고 있는 미국에 갔더니 돌아오기가 싫으셨다고 한다. 그렇게 까지만 이야기 하셨지만, 아무래도 가족을 책임져야하는 부담감과 아버지에게만 지워지는 부양의 의무가 지긋지긋하셨을 것 같다. 축복받은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는 대륙에서 자유인이 되고 싶으셨던것 같다. 그래서 내가 미국에 갈 기회가 있었을 때 집을 팔아서라도 보내주겠다고 하셨었나 보다. 그리고 그래서 내가 박사과정에 들어가지 않는것을 그렇게 아쉬워하셨나보다. 나에게 한번도 화를 내신적이 없으셨는데, 언성을 높이시면서까지 말이다.
나에게 아버지가 없을 수 도 있었다는 사실이 아찔하지만 우리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 일편 마음에 든다. 젊은 아버지를 떠올려본다. 내 눈에 기록된 아버지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아버지를 떠올려본다.

난 아무래도 아버지를 닮았다.

님과 함께

저 푸른 초원우에 (따따라따라따다)
그림같은 집을 짓고 (따따라따라따다)
사랑하는 우리님과~
한백년 살고~싶어

봄이면 씨앗뿌려 (따따라따라따다)
여름이면 꽃이피네 (따따라따라따다)
가을이면 풍년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네

멋쟁이 높은빌딩 으시대지만~
유행따라 사는것도 제멋이지만~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함께면~
님과같이 같이산다면~~

저푸른 초원우에 (따따라따라따다)
그림같은 집을 짓고 (따따라따라따다)
사랑하는 우리님과~
한백년 살고~싶어

한백년 살고 싶어~ 한백년 살고 싶어~
-------------------------------------------------
님과함께가 이렇게 슬픈 노래인지 몰랐다.
봄이면 씨앗뿌려 여름에도 씨앗뿌려
가을에도 씨앗뿌려 겨울이면 서늘하네
반딧불 초가집을 갖고싶다. ㅎㅎㅎㅎ

그래도 난 사랑하는 우리님이 있으니까^^
사랑하는 우리님과의 한백년을 꿈꾸며 계속 씨앗뿌려보쟈. 흑흑. ㅎ

당신

삶에 많은 사람  필요하지 않다.

'자기가 좋아하는 봄냄새가 나.'

라고 말해주는 당신이 있어 수줍고 행복하다.
 

노란 등 밑을 뛰어 집에가던 날,

'oo아, 근데 너는 봄이 왜 좋아?'

라고 물어보던 다정한 그대의 한마디 문득 떠오른다. 
그 때  나의 이름이 참으로 소담스럽게 느껴졌다. 

당신은 나를 포근히 감싸는 봄이다. *  


자기 앞의 생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作
(*토리에게서 온 책)
-------------------------------------

모모와 로자 아주머니의 생.
생은 모모가 반했던 서커스처럼 고통이 없는 환상도 아니고, 더빙하는 영화처럼 뒤로 돌아갈 수도 없다. 사람을 관통하여 나간 총알이 다시 뒤로 날아가 총신으로 돌아가는, 생각만으로도 여러번 반복하고 싶은 그런 일은 생에 일어나지 않는다. 생은 로자아주머니에게 병과 죽음을 주듯, 그녀의 몸과 정신을 추하게 망가뜨리듯, 죽은 사람에게 썩은 냄새가 나듯, 창녀촌에 버려진 아이에게 어머니를 살해한 아버지를 보여주듯, 고단하고 초라하다. 하지만 아무런 꾸밈도 없는 생 자체가 하나의 기적일 수 있는 것은, 그 생을 증거해 줄 사람이 있기 떄문이 아닐까. 이 소설에서 모모와 로자 아주머니는 아무런 희망도 특별한 기쁨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사랑을 받고 사랑을 쏟을 수 있는 서로에게 항상 의지하였다. 그래서 그 삶은 슬프지만 아름답고 찬란하게 느껴졌다. 나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날것 그대로의 생의 먹먹한 소중함을 모모와 로자아주머니를 통해 느꼈을 것이다. 
나는 자아실현이 가장 중요한 삶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나는 비어버린 내 꿈의 자리에 새로운 물을 붓고 있는 중이다. 한 때 꿈의 자리가 다 말라 아무것도 없었을 때, 나는 나를 지탱하기가 몹시 힘들었다. 내일이 궁금하지 않은 하루를 지내면서, 내가 오늘 눈을 감고 내일 눈을 뜨지 않더라도 괜찮겠다는 생각들을 하곤 했다. 그런 시간을 지탱해 준것은 나에게 모모와 같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내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 나에게 꿈이라는 것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을 때, 그래도 나를 '누구' 혹은 '어떤사람'이라고 정의해 줄 수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해주는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으 만큼 나약해지고 가진것이 없어졌을 때, 그래도 나는 우리 애인의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우리 엄마 아빠의 딸이고, 하느님의 자녀였다. 그게 나를 다시 꿈꾸게 하고 살게해 주었다. 로자아주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황폐한 정신을 고장난 기계처럼 마구 세상밖으로 투영할때에도, 추한 비계덩어리가 되어 버렸을 때에도, 심지어 죽어서 부패해 갈때에도 그녀는 모모를 사랑하는 로자이자 모모가 사랑하는 로자였다. 그래서 그녀의 생은 가치있고 찬란했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하밀 아저씨의 말.. 그렇다. 사랑 만이 모든 상황과 시간과 조건을 뛰어넘어 우리를 있는 그대로 빛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